허경영은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 비밀보좌관이었다!

(영상 속 당시 청와대 비서관 장국진 박사 증언)

▼▼당시 청와대 비서관 장국진박사 청와대근무 인사기록카드▼▼

'용태영'변호사의 증언과 당시 언론 기사 

허경영, 박정희 대통령 비밀보좌관 맞다”

<일요서울>▣ 글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일요서울> 2008-08-19 11:40:51

지난 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독특한 공약으로 ‘허본좌 신드롬’을 일으킨 허경영(61)씨가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밀 보좌관을 지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증인으로 나선 사람은 용태영(79·대한법조원로회 공동대표) 변호사.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석가탄신일 공휴권 확인청구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비롯해 2005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관련된 친자확인 소송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법조계의 전설’로 불릴 만큼 대표적 원로 법조인인 용 변호사가 이번에는 “허경영의 억울함을 밝히겠다”며 나선 것이다. 용 변호사는 최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대통령 재임시절 허씨와의 일화를 상세히 진술했다. 


그의 증언에 앞서 모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백성학 경인방송 이사회 의장의 인터뷰 내용도 적잖은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백 의장은 “2001년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 만찬장에서 허씨를 만났다”며 당시 받은 허씨의 명함과 초대장 원본을 공개한 것. 백 의장이 공개한 초대장은 허씨가 법원에 증거물로 제출한 것과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두가 사실이라면 ‘박 전 대통령 비밀보좌관 역임’은 물론 ‘부시 대통령 만찬장 참석’ 모두를 거짓으로 못 박은 검찰의 수사결과에 적잖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용 변호사는 지난 1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허씨의 항소심 속행공판에 변호인 측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비밀보좌관으로 일하던 허씨와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용 변호사에 따르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4월 중순. 

당시 허씨는 “박 대통령 심부름으로 왔다”며 용 변호사의 자택으로 찾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돌아갔다.

용 변호사는 “77년 4월 보름께 토요일로 기억한다. ‘청와대인데 좀 만날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왔고, ‘3시에 모시러 가겠다’고 하더라. 시간이 되자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젊은이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백성학 의장 유력한 증인


용 변호사에 따르면 이 남자는 “박 대통령 심부름으로 왔다”고만 할 뿐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집은 언제 지었느냐’ ‘청와대에 특별히 아는 사람이 있느냐’ ‘요즘 누가 괴롭히지 않느냐’ ‘차지철(당시 경호실장)을 아느냐’는 등의 질문을 한 뒤 사라졌다. 바로 이 남자가 허씨였다는 게 용 변호사의 주장이다.


당시 용 변호사 자택 (왼쪽 그림참조)은 청와대와 담장을 맞대고 있었다. 일반인은 엄격한 출입 검문 탓에 찾아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용 변호사가 허씨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씨는 왜 용 변호사를 만나려 했을까. 


용 변호사는 “허경영이 내 목숨과 집을 구해줬다”고 말했다.


칼날 같은 유신정권 아래 청와대 코앞에 위치한 민간인 자택은 문제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용 변호사는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이 집을 철거하고 날 내쫓으려 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을 바로 곁에서 모시던 허씨가 이 사실을 알고 대통령에게 건의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용 변호사는 “73년 석탄일 공휴소송에서 이긴 뒤 기독교인들로부터 엄청난 테러위협과 협박을 당했다. 친불교 성향이 강했던 박 전 대통령이 허씨에게서 이런 말을 전해 듣고 손을 써준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용 변호사와 허씨가 다시 만난 것은 24년이 흐른 2001년 5월. 당시 언론사 간부 출신 지인들과 점심 식사 중이던 용 변호사는 모임에 참석한 최모씨로부터 허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용 변호사의 업적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최씨의 소개로 용 변호사는 허씨를 만났다.


용 변호사는 “24년 전 집 앞에 나타났던 바로 그 청년이었다. 번뜩이는 안광이며 한 번 보면 못 잊을 강한 인상도 여전했다”고 재회 당시를 회상했다. 이 자리에서 용 변호사는 24년 전 자신과 나눈 대화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허씨에 대한 의구심을 털었다.



확고한 증언 vs 부실한 증거


허씨는 다시 만난 자리에서 “용 변호사님이 그 집에서 쫓겨나 이사했다면 다른 종교인들에게 암살당했을 것”이라며 “차지철이 당신을 내쫓으려고 해 내가 간섭하지 말라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 변호사의 주장은 확고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증언을 뒷받침 할 물적 증거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용 변호사는 허씨가 ‘박 전 대통령의 비밀 보좌관’이라는 것을 확신한 근거로 ▶당시 청와대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일반인이 출입하기 힘든 자신의 집을 걸어서 오갔으며 ▶허씨가 다녀간 뒤 청와대로부터 이사를 종용당하는 일이 사라졌다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허씨가 청와대에서 일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자료 즉, 신분증·임명장 등은 물론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재판부가 용 변호사의 발언을 유력한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허씨가 박정희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라는 주장은 지난해 9월에 쵤영된 장국진 박사(같은해 11월 사망)의 연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호실 1급 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 녹취록에 따르면 장 박사는 허씨를 이병철 회장의 추천을 받아 박 전 대통령의 비선 보좌관으로 임명된 인물로 소개했다. 

1960년대 제작된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장 박사의 증언은 허씨의 과거 경력을 뒷받침해줄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올 초 한 케이블 방송에 의해 연설을 한 인물이 실제 장진국 박사가 아닌 해병전우회 소속 동명이인이라는 주장이 전우회 관계자로부터 나왔다. 동영상에 나오는 사람은 ‘장국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으로 청와대 비서관 경력을 사칭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허씨가 1심 공판 때 이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했지만 실형을 면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과 재판부가 전우회 측 주장을 상대적으로 신빙성 있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 박사 본인이 지난해 11월 노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진실을 밝히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한편 지난해 11월 사망 소식을 다룬 중앙일간지 부고에 장 박사는 ‘문학박사’로 소개됐다. 하지만
“연설을 한 사람은 아버지가 틀림없고, 청와대와 해병대 경력도 갖고 있다”는 장 박사 아들(53)의 인터뷰 내용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붉은 동그라미 박정희 대통령(오른쪽)과 젊은 시절의 허경영 총재 (왼쪽)

당시 ​<일요서울> 원본 인터넷링크 자체 소실로  '한겨례 정치토론방'에 퍼온 기사의 링크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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